
한국영화는 언제나 시대의 얼굴을 비춰왔습니다.
일제강점기, 영화는 억압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도전이었고, 오늘날의 영화는 자유로운 창작 환경 속에서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일제강점기와 현재를 중심으로, 영화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검열, 표현 방식, 주제 의식이라는 세 가지 흐름을 따라가며 비교해보려 합니다.
일제강점기 영화의 통제
1919년, 김도산 감독의 <의리적 구토>가 상영되며 한국영화는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작은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조선총독부는 영화가 민중을 자극하고 조직할 수 있는 위험한 매체라고 여겼고, 이에 따라 모든 영화는 철저한 검열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검열은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시작됐고, 제작과 상영 전후로 반복됐습니다.
작품에 민족의식이 담기거나 정치적 메시지가 포함될 경우, 상영 허가 자체가 나지 않았습니다.
<아리랑>(1926)은 나운규가 일제의 억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크게 성공했지만, 이후 그의 활동은 계속된 탄압에 시달렸습니다.
당시 영화는 대부분 무성영화였고, 줄거리나 감정을 전달하던 변사(辯士)의 해설은 관객에게 강한 영향력을 주었습니다.
그만큼 당국은 변사의 발언까지 통제하려 했고, '변사 검열'이란 제도까지 시행되었습니다.
1940년대에 접어들며 조선영화령이 공포되자, 조선어 영화는 거의 사라졌고 일본어 중심의 선전물이 대세가 됩니다.
영화는 조선인의 현실을 보여주는 창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의 시선을 강요하는 도구로 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영화인들은 그 안에서도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그들에게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조용한 저항의 수단이었습니다.
자유
지금의 한국영화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유로운 환경에서 만들어집니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되고 있고, 정치, 사회, 젠더, 역사 등 어떤 주제든 영화 안에서 거리낌 없이 다뤄질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아예 시도조차 어려웠던 주제들이 이제는 관객의 큰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냅니다.
<실미도>(2003), <변호인>(2013), <택시운전사>(2017) 같은 작품은 실제 정치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깊이 있게 조명했습니다.
이들 영화는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사회적 대화를 이끄는 시작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과거에 배제됐던 다양한 집단의 이야기도 점차 스크린 속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김보라 감독의 <벌새>(2019)는 한 소녀의 시선을 통해 가족과 사회, 성장의 아픔을 섬세하게 풀어내며 새로운 감성의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성소수자, 이주민, 청소년 등 이전까지 영화에서 잘 다뤄지지 않던 인물들이 중심에 서기 시작한 것도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기술의 발전 역시 표현을 풍부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비용의 제약 없이 고퀄리티 영상이 가능해지면서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제작도 늘어났고, 다양한 형식과 시선이 관객과 만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지금의 한국영화는 헐리우드와 같은 대규모 자본 중심의 시장에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잃지 않고, 독창성과 사회적 감각을 무기로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고 있습니다.
성찰
일제강점기에는 영화 속 이야기조차 제약받았습니다.
‘의리’, ‘가족’, ‘순응’ 같은 제한된 주제만 허용됐고, ‘해방’이나 ‘저항’은 감히 다룰 수 없었습니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기보다 현실로부터 눈을 돌리게 만드는 도구였죠.
하지만 오늘날 한국영화는 정반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암살>, <항거: 유관순 이야기>, <박열> 같은 작품들은 일제의 탄압과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담아내며, 과거를 조명하고 현재의 우리가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는지 묻고 있습니다.
또한 현대 한국영화는 단지 과거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대를 꿰뚫는 통찰과 질문을 던지는 방향으로 진화해왔습니다.
<기생충>은 계층 격차라는 글로벌한 문제를 한국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며, 전 세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한공주>, <소년들> 같은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사회 시스템과 제도의 책임을 돌아보게 합니다.
오늘의 영화는 옳고 그름을 단순히 구분하기보다, 관객 스스로 질문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검열 철폐’ 그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영화는 이제 감상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사고하고 참여하는 장으로 변모하고 있는 셈입니다.
일제강점기엔 영화가 통제의 대상이자 억압의 도구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영화는 표현의 자유와 사회적 성찰이 공존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산업의 발전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민주화되고 성숙해졌다는 하나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시대마다 검열의 기준, 표현의 방식, 다뤄지는 주제는 달라졌지만, 영화가 시대를 비추는 창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창을 통해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고, 오늘을 성찰하며, 미래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결국 영화는 시대를 가장 정직하게 기록하는 예술입니다.
그리고 그 거울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카메라 앞에서 또 다른 진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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